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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ungmooncho.com/2024/02/05/memory-skill/
기억력이 높은 사람 아래에서 일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얼마나 긴장을 하게 될까 생각했다. (…) 특히 회의 진행이 효율적이었다. 일반적인 회사에서 회의 시간에 누가 뭔가를 질문하면, “아, 그건 지금 제가 기억이 안나는데,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고 보고드리겠습니다.” 라고 반응하는 경우가 참 많다. 사실 그 중 절반은 말만 하고 실제 보고하지도 않고, 또 절반은 질문을 한 사람이 질문한 사실을 잊어버려서 그냥 지나가버리기가 일쑤다. 그렇지만 그가 있는 회의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즉시 숫자를 대답했고, 바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즉시 그 숫자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서 대답하고는 했다. 의사 결정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서, 그 때부터 연습해온 ‘기억하는 능력’ 덕에 시간을 아끼고, 일을 빠르게 진행시키고,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러면서, 좋은 기억력이 모든 리더에게 꼭 필요한, 그리고 필요함을 넘어서 매우 필수적인 자질이라고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상사가 하는 최악의 행동 중 하나는, 직원에게 일을 시켜놓고, 조사를 시켜놓고 자기가 잊어버리는 것이다. (…) 이런 회사에서 중요한 일들이 착착 진행될 수 있을까?
이렇게 기억력이 나쁜 (또는 기억을 굳이 하려고 하지 않는) 상사가 하는 또 하나의 행동이 있다. 바로 부하직원 또는 비서에게 ‘메모’를 시키는 것이다. 직원은 그러면 필기 로봇이 된다. 비참한 일이다. 필기는 하지만 권한은 없다.
기억력은 선천적인 능력이라 어느 정도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긴 하지만, 얼마든 훈련에 의해, 그리고 도구의 도움을 받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연습하면, 언젠가 자신의 기억력에 감탄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당시 나를 감탄하게 했던 사람은 송재준이고, 1500명의 직원을 가진 (주) 컴투스의 대표이사역을 약 2년간 맡으며 코인원, 위지윅스튜디오 등 굵직한 투자들을 결정해 큰 성과를 낸 후 2023년 3월에는 ‘글로벌 최고 투자 책임자’ 역할로 전향했다. 또한 초기 단계 스타트업 투자사인 크릿벤처스의 설립자이자 대표이기도 하다
실리콘밸리 한인창업 0세대, 우연한 기회로 만나뵀던 조성문 대표님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대단한 분임을 알게 됐다. 항상 조성문 대표님 블로그에 새 글이 올라올 때면 읽는데, 오늘 읽은 글은 정말 중요한 지점을 짚어주셨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쓴다.
나는 내가 보고 듣고 배운 것을 까먹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마침 나의 장점 중 하나인 각종 툴에 대한 빠른 러닝커브와 용도에 맞게 지지고 볶는 능력이 결합되어 사실상 원하면 언제든 ‘검색’해서 찾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완전하진 않지만, 점진적으로 나아지고 있고 현재의 환경이나 워크플로우에 꽤 오래동안 정착할 것 같다.
아무튼 각설하고, 투자은행/컨설팅을 지망하면서 이리저리 오가며 자주 들었던 이야기 중에 하나는 프로젝트의 온갖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처음에는 되게 의아했는데, ‘필요하면 찾아볼 수 있게 구축해두면 기억하는 수고를 덜 수 있지 않나’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고, 이 생각이 기저가 되어 위 문단에서 말한 환경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나도 내 나름 경험이 쌓이면서 느낀 점들이 오늘 읽은 조성문 대표님의 글에 적혀있었다.
회의는 비용이 정말 큰 프로세스이기 때문에 효율적이어야 한다
회의는 실시간으로 빠르게 의사소통하여 어떤 사항에 대해 이해 당사자들 간에 합의하고 결정을 내리기 위한 프로세스다. 그런데 실상은 ‘일단 만나서 이야기해보자 그럼 답이 나오지 않을까’식의 회의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정보를 공유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회의도 이해 당사자들 간에 해당 정보에 대한 ‘level of context’를 맞추는 것이 회의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회의는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회의 시간은 짧게, 준비는 길게 해야 효율적인 회의가 만들어진다.
동아리를 만들어봤던 경험은 이런 측면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동아리를 만든 것 이유는 되게 다양했는데, 그 중에 하나는 학생 동아리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이리저리 고쳐보려면 결국 내가 조직장이 되어 만들어봐야 한다는 결론 때문이었다.
나는 학생 동아리의 많은 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그 중에 하나는 ‘아무 쓸모도 없는 회의를 매주 한다는 것, 심지어 오프라인으로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회의의 탈을 쓴 친목이었다)
1학년 때 학생회 회의를 하면서, 내가 아직도 좋아해 마지않는 회장 형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었다.
여기 사람이 13명이고, 회의 1시간만 해도 13시간 다 날아가는건데, 정말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아?
아마 미흡한 준비를 지적했다거나, 이래저래 지연되는 회의상황에 대해 지적했던 맥락으로 기억한다. 싫은소리 하지 않는 형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형의 이 말이 아직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이 때문인지 나는 이후에 동아리를 만들고 이 말을 종종 했다.
기억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조금 다른 이야기로 가서…
투자은행과 컨설팅은 ‘사람간의 이해 조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일은 현실적 제약조건 속에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도 이들은 어떻게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
투자은행과 컨설팅의 일에는 이해관계자가 많다.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이해관계자까지 고려하면 이들이 고려해야 할 이해관계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다. 그렇기에 이들의 일은 어찌보면 이해관계자와의 회의와 회의를 준비하는 일, 이들을 찾아다니는 일(세일즈)로 구분할 수도 있겠다.
이런 일은 필연적으로 이해관계자 모두를 설득할 수 없고, 일은 많고, 민감한 사항들을 조정해야 하기에 극도로 효율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회의란 이해관계자와 수많은 ‘결정되지 않은 사항’을 결정해야 하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다. ‘필요할 때 무언가를 찾아볼 수 있는 시스템’을 사용할 시간조차도 아깝다. 즉각적으로 머리 속의 정확한 정보로 소통해야 한다.
상상을 해보자, 회의에서 질문이 나올 때마다 필요한 자료를 찾는 모습은 어떻게 비춰질까? 아무리 효율적으로 자료를 그때그때 찾아도 회의의 맥락을 끊어먹고, 신뢰가 가지 않는 모습이 아닐까. 회사의 명운이 달린 전략적 돌파구를 만들어야 하는 프로젝트에서, 회사를 사고 파는 상황에서 질문 하나에 대답하지 못해서 자료를 뒤적거리는 모습을 보면 ‘회의 준비를 뒤지게 안해왔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이런 업종은 전문가처럼 보여야 한다. 많은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어야 한다. 기억력은 이런 인상을 구축하는데 가장 기초적인 능력이다.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고객들은 이렇게 의사결정 비용이 큰 일을 맡기지 않는다. 투자은행과 컨설팅이 극도의 엘리티시즘을 추구하는 것은 그들이 가진 사회문화적 배경뿐만 아니라, 엘리티시즘만이 조직 내에서도, 클라이언트에게서도,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에게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엘리트로 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너무 중요한 업이다.
인상이 이정도로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새태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 필연적으로 모두를 설득할 없기 때문에 인상은 중요하다. 전화와 이메일을 주고 받는 순간, 회의에서 말을 섞는 순간, 그 모든 순간 순간에서 신뢰를 잃으면 안된다.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급박한 상황 속에서 상대방의 사정을 사려깊게 이해해줄 클라이언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믿을만 하구나’를 한번에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차갑게도 투자은행과 컨설팅은 인상과 학벌, 트랙레코드가 어찌보면 전부인 곳이다. 그게 실력인 필드다.
그래서 회의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자원인 ‘시간’을 한꺼번에 쓰는 일이기 때문에 효율적이어야 한다. 주요 내용을 ‘기억’하고, 회의 전에 준비를 철저하게 해서 임해야 회의에서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기억력’은 정말 중요하다.
조직장의 말과 행동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으레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고. 조직장은 조직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그 고군분투 중에 하나는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무언가 일을 시켰다면, 그 이후에 보고가 들어오지 않은 그 일에 대해 확인해야 한다. 일을 시킨 목적을 궁금해한다면, 설명을 통해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시키는 그 모순을 이해할 수 있을만큼 조직장은 믿을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너는 하지 않는 일을 왜 나한테 맡기냐. 너가 일 하기 싫은 것 아니냐’라는 질문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 조직장을 향한 구성원의 신뢰는 이런 모순을 뛰어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신뢰의 구축은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조직을 만들고 적어도 내가 했던 노력은
-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니니까) 내가 시킨 일이 강제적이지 않았으면 했고
- 이들의 장래에 최소한 도움이라도 되어야 하며
- 내가 한 말은 지킬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최소한 내가 시킨 일, 내가 한 약속은 반드시 다 기억하고 지키기위해 노력했다. 이런 노력이 잘 working 했는지에는 의문이 있지만, 후배들의 말과 행동으로 보아 나는 그래도 믿을만한 사람으로 각인이 되지 않았나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개인의 미래 관점에서 조직을 만든 일이 얼마나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항상 의문부호였지만,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와 약속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은 내 굳은 신념 중에 하나였고, (조직이 잘 성장해서 성과를 내고 있는 것과 무관하게) 적어도 이 부분은 지켜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결론은 코어한 사항들은 반드시 정확한 기억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성문 대표님의 글로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을 기록하는 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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